책을 마무리하고, 마지막 일주일을 돌아보며 쓴 글이 결국은 이번 달 셀프북코칭의 후기가 되어버렸다.
1주차는 그저 멍하게 읽었고, 2주차는 매우 회의적이었으나, 3주차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. 지난주 달빛나눔에서 시작된 통찰은 나에게 다른 시선으로 삶을 보게 해주었다. 지진도 폭풍우도 자연과 지구의 입장에서는 할 일을 했을 뿐,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일. 깊은 마음 바닥에서는 거대한 삶과 같은 자연을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는 것을.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니 그저 지나가는 일로 통과해 보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만 해 나가면 된다는 것을.
민들레 홀씨를 불어내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어떤 것은 생명을 다할테고, 어떤 것은 비옥한 땅에 자리 잡아 또다시 예쁜 꽃을 피우리란 것을. 그것은 민들레가 자연스레 할 일이라는 것을. 내가 간섭하여 생명을 피우라고 강요하거나 생명을 못 피워 안타까워 할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.
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생생하게 라이브로 연결된 웨비나에서는 더 많은 통찰들이 있었다. 삶은 거대한 공 같아서 전체를 한번에 다 꿰뚫어보기는 어렵다. 나에게 보여주는 면은 어쩌면 아주 일부분일지도. 공이라는 것이 다양하게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도 있다. 내가 이 공을 컨트롤하려 하지 말고 그저 공이 구르는대로 따라 간다면? 그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? 그렇다면 억지 힘을 쓰지 않고도 나는 자연스럽게 공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며 결국엔 앞뒷면, 위아랫면을 모두 보게(경험하게) 될 것이다. 그리고 설사 공의 어떤 한 부분이 나에게 힘듦을 줄지라도 금방 공은 다시 굴러 희망의 면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.
한 주 동안 이 만큼의 깨달음을 얻게 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아마도 '사람'이다. 십여 년만에 코치님과 음성으로 대화하고 책을 도구 삼아 내 마음을 투정부린 것도, 또 다른 공동체에서 내 일상의 희노애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도, 시아버지의 칠순을 보내며 가족들과의 행복감을 곱씹을 수 있었던 것도, 결국은 사람이다. 결국 나와, 가족과,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과 그것에서 비롯된 사랑이다. 세상이 나에게 스스로 일어설 기회를 주는 듯한 느낌이었던 한 주.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은 어떤 힘든 일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삶에 대한, 그리고 사람(또는 사랑이라 읽고 싶다)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.
이렇게 온 마음으로 이번 달에 주어진 책을 읽고, 이번 달의 엔젤을 곱씹는다.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 것도 삶이 보여주는 흐름인걸까? 잠시 또 머리로 계산하려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지만 이런 장면을 순간순간 알아차린다는 것이 중요하니까.
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겨 놓고픈 기록이 하나 더 있다. 웨비나 하던 날, 오랜만에 라이브로 모인 이들 중에는 생일인 이와 생의 시작을 앞둔 이가 함께 있었다. 삶이라는 것에 대해 파고드는 이야기 중에 그들과 함께 하며 든 생각이었다. 이렇게 삶은 공처럼 구르며 끊임없이 새로이 시작되고 계속 이어지겠지. 그런 삶은 분명 축복된 것임을 기억하자,라고.
추신) 오늘 새벽 자기대화일지를 쓰다가 문득 떠올랐다. 마음이 편안해지자 지난 2~3주간 나를 힘들게 하던 어지러움이 없어졌다는 것! 나를 편안하게 하자. 삶의 흐름을 그저 관찰해보자. 저자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아직도 어렵지만 북코칭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간 나를 발견한다.
1주차는 그저 멍하게 읽었고, 2주차는 매우 회의적이었으나, 3주차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. 지난주 달빛나눔에서 시작된 통찰은 나에게 다른 시선으로 삶을 보게 해주었다. 지진도 폭풍우도 자연과 지구의 입장에서는 할 일을 했을 뿐,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일. 깊은 마음 바닥에서는 거대한 삶과 같은 자연을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는 것을.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니 그저 지나가는 일로 통과해 보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만 해 나가면 된다는 것을.
민들레 홀씨를 불어내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어떤 것은 생명을 다할테고, 어떤 것은 비옥한 땅에 자리 잡아 또다시 예쁜 꽃을 피우리란 것을. 그것은 민들레가 자연스레 할 일이라는 것을. 내가 간섭하여 생명을 피우라고 강요하거나 생명을 못 피워 안타까워 할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.
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생생하게 라이브로 연결된 웨비나에서는 더 많은 통찰들이 있었다. 삶은 거대한 공 같아서 전체를 한번에 다 꿰뚫어보기는 어렵다. 나에게 보여주는 면은 어쩌면 아주 일부분일지도. 공이라는 것이 다양하게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도 있다. 내가 이 공을 컨트롤하려 하지 말고 그저 공이 구르는대로 따라 간다면? 그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? 그렇다면 억지 힘을 쓰지 않고도 나는 자연스럽게 공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며 결국엔 앞뒷면, 위아랫면을 모두 보게(경험하게) 될 것이다. 그리고 설사 공의 어떤 한 부분이 나에게 힘듦을 줄지라도 금방 공은 다시 굴러 희망의 면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.
한 주 동안 이 만큼의 깨달음을 얻게 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아마도 '사람'이다. 십여 년만에 코치님과 음성으로 대화하고 책을 도구 삼아 내 마음을 투정부린 것도, 또 다른 공동체에서 내 일상의 희노애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도, 시아버지의 칠순을 보내며 가족들과의 행복감을 곱씹을 수 있었던 것도, 결국은 사람이다. 결국 나와, 가족과,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과 그것에서 비롯된 사랑이다. 세상이 나에게 스스로 일어설 기회를 주는 듯한 느낌이었던 한 주.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은 어떤 힘든 일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삶에 대한, 그리고 사람(또는 사랑이라 읽고 싶다)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.
이렇게 온 마음으로 이번 달에 주어진 책을 읽고, 이번 달의 엔젤을 곱씹는다.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 것도 삶이 보여주는 흐름인걸까? 잠시 또 머리로 계산하려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지만 이런 장면을 순간순간 알아차린다는 것이 중요하니까.
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겨 놓고픈 기록이 하나 더 있다. 웨비나 하던 날, 오랜만에 라이브로 모인 이들 중에는 생일인 이와 생의 시작을 앞둔 이가 함께 있었다. 삶이라는 것에 대해 파고드는 이야기 중에 그들과 함께 하며 든 생각이었다. 이렇게 삶은 공처럼 구르며 끊임없이 새로이 시작되고 계속 이어지겠지. 그런 삶은 분명 축복된 것임을 기억하자,라고.
추신) 오늘 새벽 자기대화일지를 쓰다가 문득 떠올랐다. 마음이 편안해지자 지난 2~3주간 나를 힘들게 하던 어지러움이 없어졌다는 것! 나를 편안하게 하자. 삶의 흐름을 그저 관찰해보자. 저자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아직도 어렵지만 북코칭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간 나를 발견한다.